‘네카쿠배’가 말하지 않는 ‘플랫폼법’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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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네카쿠배’가 말하지 않는 ‘플랫폼법’의 진실 빅테크 독점규제법이 과연 혁신·성장을 막고 역차별·이중규제일까

기사입력2024-09-19 10:32

김주호 객원 기자 (dream@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9일 ‘온라인 플랫폼 경쟁촉진법’을 추진하겠다던 기존의 입장을 결국 철회했다. 현행 공정거래법과 대규모유통업법을 개정해, ‘제2의 티메프 사태’를 막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정부가 개정 공정거래법의 적용대상을 매우 엄격하게 설정하면서 국내 기업 중에서는 이미 이견이 없는 독과점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만 포함이 되고, 최근 1628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쿠팡이나 티메프는 정작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들의 독과점과 불공정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해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중소플랫폼, 중소상인, 판매자, 택배 및 배달노동자, 소비자·시민단체들의 오랜 요구가 묵살된 셈이다.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을 통한 정산주기 단축 또한 플랫폼 대기업의 독과점 규제와는 큰 관련이 없다는 점에서, 정작 ‘티메프 없는 티메프 방지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플랫폼 독점규제법과 공정화법을 반대하는 측의 논리는 크게 세가지다. ▲첫째, 플랫폼법이 플랫폼 기업들의 혁신과 성장을 저해한다, ▲둘째, 구글이나 알리·테무 등 해외 플랫폼 기업과 경쟁해야 할 국내 플랫폼 기업을 역차별해 해외 플랫폼 기업의 국내시장 잠식을 가져온다, ▲셋째, 현행 공정거래법으로 규제가 가능한만큼 불필요한 이중규제라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사실일까?

◇플랫폼법이 혁신과 성장을 막는다?=빅테크와 스타트업은 같은 플랫폼 업계에 속해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빅테크가 독과점한 시장에서는 알고리즘 조작을 동원한 자사우대나 최혜대우, 멀티호밍 제한, 과도한 수수료 부담, 막대한 프로모션 경쟁 부담으로 인해 스타트업이 빅테크와 경쟁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니 네이버나 카카오, 구글, 쿠팡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나 ‘한국온라인쇼핑협회’, 우아한형제들이 참여하고 있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이 플랫폼 업계 전체의 입장을 대변한다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실제로 ‘사전지정제’를 기본으로 하는 ‘플랫폼 독과점 규제법’의 대상은 모든 플랫폼 기업들이 아니라 이른바 ‘빅테크’라고 불리우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독과점 사업자로 한정된다. 여기에는 ‘GAFAM’이라고 불리우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해외사업자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 배달의민족(네카쿠배) 등이 해당한다.

과연 이들 빅테크들의 시장 독과점을 규제하는 것이 플랫폼 업계 전체의 혁신과 성장을 저해할까? 오히려 반대다.

온라인 플랫폼 시장은 초기에 가입자를 대거 확보해 독과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면, 입점업체나 소비자들이 쉽게 해당 플랫폼을 이탈할 수 없는 ‘자물쇠효과(Lock-in)’와 하나의 시장에서 확보한 독과점적인 지배력을 인접한 다른 시장으로 전이시켜 사업을 확대할 수 있는 ‘시장전이효과’로 인해, 새로운 경쟁사업자의 성장을 막고 경쟁을 후퇴시킨다. 무료서비스로 메신저 시장에 등장해 10년 넘게 ‘국민앱’으로 군림하고 있는 카카오톡이 카카오톡을 통해 확보한 가입자를 바탕으로 카카오택시나 카카오페이, 카카오선물하기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가고, 로켓배송으로 온라인쇼핑 분야의 점유율을 확보한 쿠팡이 쿠팡이츠나 쿠팡플레이를 끼워파는 것이 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혁신적인 배달앱 스타트업이 나타나 점유율 60%에 육박하는 배민이나 쿠팡의 자본력을 등에 업은 쿠팡이츠와 경쟁할 수 있을까?

처음엔 무료서비스와 각종 할인, 프로모션으로 소비자 편익이 증가하고 혁신이 발생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이렇게 독과점이 형성된 시장에서는 플랫폼 기업이 무료로 제공하던 서비스를 유료로 전환하거나 수수료를 올려도 대항하기 어렵다. 이러한 시장에서는 새로운 중소형 플랫폼 기업이 나타나 경쟁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경쟁과 혁신을 죽인다. 오히려 독과점 규제법으로 ‘네카쿠배’의 시장 독과점, 스타트업에 대한 불공정 행위를 강력히 규제할 때, 경쟁은 촉진되고 소비자 편익이 늘어난다. 시장독과점은 시장실패이고, 따라서 공공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는 경제학의 기본이다. ‘자율규제’로 될 게 아니라는 말이다.

◇플랫폼법이 국내기업을 역차별한다?=역차별이라는 주장도 해외기업의 국내시장 잠식이라는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

플랫폼 독점규제법과 공정화법을 반대하는 측은 이 법이 플랫폼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저해하고, 국내 플랫폼 기업을 역차별하며, 현행법으로 규제가 가능해 불필요한 이중규제라고 주장한다. 과연 이러한 주장은 사실일까? <이미지=이미지투데이>

정부가 독과점 플랫폼 규제법 제정 방침을 밝혔을 때, 가장 먼저 반대한 기관 중 하나가 바로 ‘미국상공회의소’라는 점은 독과점 규제법의 가장 직접적인 규제대상이 바로 해외 빅테크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윌리엄 라인시 선임자문관은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EU와 손잡고 법안을 추진하는 것은 미국 기업을 불균형적으로 겨냥하고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은 눈 감아주는 일”이라는 노골적인 반중국 논리를 펴기도 했는데, 알리바바와 알리, 테무가 독점규제법의 대상이 되지 않는 이유는 중국 기업이어서가 아니라 시장점유율, 즉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되레 독점규제법은 중국계 이커머스가 네이버나 쿠팡만큼 성장했을 때 이들의 독과점을 막고 국내 유통시장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중요한 둑이 된다.

일각에서는 해외 플랫폼이 국내에서 국내 빅테크와 동일한 불공정 행위를 저지르더라도 사실상 제재를 하기 어렵거나 해외법인을 통한 매출 축소로 제대로 된 과징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국내 빅테크도 규제해서는 안된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국내에서 법제도와 법집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글로벌 호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 해외기업이라는 이유로 법집행이 제대로 안되면 제도를 보완해 그 집행력을 높여야 할 일이지, 국내기업도 같이 봐달라는 주장은 참신함을 넘어 가히 혁신적이기까지 하다. 구글의 인앱결제 행위가 미국에서는 9000억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과징금이 300억원대에 그친 것만 봐도 역차별은 성립하지 않는 주장이다. 만약 미국에서 카카오페이처럼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해외 플랫폼 기업에 무단으로 제공하거나 쿠팡처럼 임직원을 동원해 리뷰를 조작하고 타사에 불이익을 줬다면 수천억원의 과징금은 물론이고, 소비자들이 천문학적인 집단소송으로 그 책임을 제대로 물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집단소송제도도 없다.

◇독과점 규제가 곧 혁신과 소비자 이익=‘이중규제’라는 주장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 현행 법제도로도 빅테크의 독과점 규제가 가능하면 유럽연합이나 미국, 일본, 인도 등 세계 각국이 왜 독점규제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나섰겠는가.

빅테크의 불공정 행위가 점차 고도화되고 이를 통한 시장점유율 확대가 오프라인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현행 제도에 따라 경쟁당국이 3~4년의 지난한 조사 끝에 과징금 처분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완성된 독과점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은 충분히 확인된 바 있다. 정부는 사후추정을 통해 이러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하지만, 항변권 보장 등 제도의 취지를 무력화할 수 있는 장치들을 함께 담았다. 윤석열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은 말그대로 ‘생색내기’에 그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6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플랫폼 토론회에서 한 미국 변호사가 “미국은 한때 디지털 플랫폼 규제에 나서려 노력했으나 빅테크들의 로비 등으로 끝내 현실이 되지 못했다”, “거대 빅테크가 미국시장을 지배하게 되며 이제는 다양한 플랫폼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의 플랫폼 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네카쿠배’ 눈치만 보며 비틀거리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 들어 대부분의 정부 정책이 일관성 없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는 있지만, 유독 온라인 플랫폼 분야는 원칙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침이 심했다. 2021년 1월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을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됐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자율규제’를 강조하며 사실상 플랫폼 기업들의 시장점유율 확대와 독과점 행위에 손을 놓다시피 했다. 그러다 카카오택시의 알고리즘 조작, 구글의 인앱결제 강요 등의 사건으로 중소상인과 노동자, 중소IT기업, 소비자 피해가 잇따르고, 해외 주요국들이 앞다퉈 ‘온라인 플랫폼 독과점 규제법’을 추진하자 공정위를 중심으로 독점규제법 추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 총선을 앞두고 진행된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최근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서 거대 독과점 기업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소상공인과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며, “정부는 온라인 플랫폼 분야에서도 다른 플랫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 플랫폼 내에서 소상공인을 부당하게 차별하는 행위, 소비자들의 권익을 침해하여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에 대해 시정 노력과 함께 강력한 법 집행을 할 것”이라는 발언도 내놓았다. 플랫폼 대기업들의 독과점은 입법으로, 불공정 행위는 자율규제로 해결하겠다는 투트랙 방침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그러나 2024년 2월 설 전후로 정부 차원의 ‘온라인 플랫폼 경쟁촉진법’을 공개하겠다던 공정거래위원회는 돌연 ‘사전지정제’의 대안을 찾아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사전지정제는 제외하더라도 경쟁촉진법은 입법할 것이라는 의지도 보였다. 그런데 지난 9일 정부가 여러 차례 공언했던 경쟁촉진법의 입법마저 포기한 것이다.

그 사이 플랫폼 대기업들은 정부의 자율규제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잇따라 소비자 요금제와 입점업체 수수료를 인상하고, 경쟁사업자를 퇴출하기 위한 노골적인 불공정 행위를 저질렀다. 결국 1조원이 넘는 판매대금 미정산 사태를 발생시킨 티메프 사태로 정점을 찍었다. 언제까지 정부의 빅테크들 눈치보기로 스타트업과 중소상인, 택배·배달노동자, 소비자들이 피해를 봐야하나. 빅테크 독점규제법, 지금도 이미 많이 늦었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