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 일해 벌면 세금 9천만원…상속받으면 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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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ㅣ 키워드이슈 5억 일해 벌면 세금 9천만원…상속받으면 0원 세 번째 부자감세 속 깨알같이 담긴 자영업자 증세안

기사입력2024-07-31 12:00

김은정 객원 기자 (ejcong@pspd.org) ㅣ다른기사보기

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지난 7월25일, 윤석열 정부는 ‘역동적 성장’과 ‘민생안정 지원’을 목표로 한 ‘2024년 세법개정안’을 발표했다. ▲가업상속공제 확대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통합투자세액공제 연장과 공제율 상향 ▲벤처기업 복수의결권주식 취득 과세특례 신설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 폐지 등을 골자로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부터 강조한 종부세 폐지 또는 완화안은 빠졌지만, 자산과세를 줄줄이 폐지·유예·완화하는 재벌·대주주·부자감세안이다. 지난 2년 부자감세에 상속세 완화까지 더해준 윤석열표 감세종합세트의 완성판이라고 할 수 있다. 금투세 효과를 뺀, 3년간 부자감세 효과만 단순 합산하면 81조원이 넘는데도, 기획재정부는 “(누적 감세규모인) 81조원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비교 대상은 5년간 세입(1837조원)으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며, “(감세 정책은) 지속적인 성장과 균형에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밝혔다. 과연 그럴까?

‘부의 대물림’ 걸림돌 될만한 것 모두 치워 준 셈

2023년 상속세 결정세액 12.3조원의 64%(7.8조원)를 상위 1%가 냈다. 상위 30%가 93.5%를 냈다.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자는 것은 모든 상속인이 아니라, 상속세 대부분을 납부하는 초고액 자산사들이 세금을 덜 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반면, 근로소득세 최고세율이 45%이다. 정부안대로면, 일해서 5억원을 벌면 근로소득세 9406만원을 내지만, 5억원을 상속받으면 상속세는 0원이다. 일해서 번 5억원보다 무상 이전된 5억원의 세 부담이 더 적어지는 것이 우리사회의 지속적인 성장과 균형에 꼭 필요한 정책이란 말인가?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3540만원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가계 상당수는 물려줄 재산 5억원조차 없다.

게다가 경영권 프리미엄이 40% 이상 존재하는 데도 최대주주 보유주식 20% 할증평가도 폐지하고, 가업상속공제는 사실상 전면 확대하자고 한다. 최대주주가 부모로부터 경영권이 있는 지분을 할증평가 없이 물려받고 나서, 시장에 내다 팔면 40% 이상 프리미엄을 붙여 팔 수 있게 된다. 경제적으로 실재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없는 셈 쳐주겠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부의 대물림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은 모두 치워주자는 것 같다. 2024년 세법개정안 감세규모는 향후 5년간 18.4조원(누적법)인데, 상속·증여세로 인한 감세규모만 18.6조원으로, 그 효과가 압도적이다.

곰탕집에서 파스타집 변경해도 되는 가업상속공제

가업상속공제는 연 매출액 5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에 최대 600억원까지 상속세를 공제해주는 제도다. 제도 요건과 기준이 넓고 공제한도가 너무 높은 데다가, 사후관리 요건을 지속적으로 완화해왔다. 현재의 가업상속공제에 따르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곰탕집을 물려받아 파스타집을 차려도 가업을 승계한 것으로 본다. 가업상속공제가 ‘가업’을 변질시킨 채 일부 고액 자산가들에게 특혜를 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가업상속공제를 사실상 전면 확대하는 안을 내놓았다. 밸류업·스케일업 우수기업 및 기회발전특구 창업·이전기업에 대해서는 공제대상을 전체(상출기업집단 소속 기업 제외)로 확대하고, 공제한도도 2배로 상향하거나 한도를 없애겠다고 한다. 2022년 결산 기준 국내 중견기업 5576곳 중 연 매출액 5000억원 이상인 기업은 423곳(7.6%)에 불과하다. 현행 기준으로도 대다수의 중견기업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기업이 투자나 연구개발을 늘리거나, 창업 또는 이전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적 판단의 문제다. 오히려 오너일가 상속을 위해 경제상황과 관계없이 투자나 연구개발비를 늘리고 무리해서 이전한다면, 이러한 가업승계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정부안대로면, 일해서 5억원을 벌면 근로소득세 9406만원을 내지만, 5억원을 상속받으면 상속세는 0원이다. 우리나라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4억3540만원인데, 가계 상당수는 물려줄 재산 5억원조차 없다. <이미지=이미지투데이>

가업상속공제는 ‘가업’의 형태로 이전되는 유산을 무상으로 취득하더라도 이를 과세대상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매우 강력한 세제 혜택(최재령, 2016)이다. 하지만, 가업상속공제의 긍정적 효과를 제대로 분석한 논문이나 보고서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도리어 도입 취지가 훼손된 채, 가업상속공제가 승계받은 기업과 창업한 기업과의 형평성을 저해하고 있다.

‘가업승계’가 아닌 ‘세습’의 수단으로 변질된 가업상속공제는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가업의 공제가치 판단기준을 마련하거나, 공제받은 기업이 고용을 유지·창출하고 사업소득 증대나 경제성장 기여 등 세액공제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공제요건 및 사후검증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1%를 위한 금투세 폐지…소득 있는 곳에 세금은?

정부는 예상대로 금투세 폐지도 내놓았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데 조세원칙을 정부가 나서서 훼손하고 있다. 개인투자자 1%도 안 되는 자산가들이 납부할 금투세가 폐지되면, 그 혜택은 결코 다수의 ‘개미’가 아닌 극소수의 ‘슈퍼개미’에 집중될 것이다.

일각에서는 금투세가 시행되면, 이른바 큰손 투자자들이 해외로 떠난다고 걱정한다. 금투세는 국내 상장주식 및 공모주식형 펀드 등의 금융투자소득은 연간 5000만원 이상, 해외투자 등 기타 금융투자소득은 250만원 이상일 때 부과한다. 50억원 자산가가 10% 수익률을 내서 5억원을 벌었다고 가정하면, 국내주식투자는 1억72만원 가량을 세금으로 내지만, 해외주식투자는 1억2000만원 이상을 세금으로 낸다. 투자자들이 2000만원씩 세금을 더 내고 해외로 나간다는 말인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건 세금 때문이 아니라 기업 밸류의 문제일 것이다.

빚내서 세금을 내는 자영업자를 외면한 감세 폭주

우리 사회는 수차례에 걸쳐 기업의 세 부담을 덜어준다고 기업경쟁력이 올라가지 않으며 경제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일부 계층의 감세를 통한 민생경제 회복이 어불성설이며, 정부 재정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경기침체의 악순환에 빠진다는 사실도 확인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 세법개정안에는 매출액 5억원 초과 소매업·음식점업 등 사업자에 대한 신용카드 부가가치 세액공제를 현행 1.3%에서 0.65%로 하향하는 안이 담겨 있다. 2023년 가맹사업 현황 통계발표에 따르면, 2022년도 말 편의점 가맹점 평균 매출 1위는 GS25로 6억3972만9000원이다. 2위인 CU는 6억2179만5000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1분기 자영업자 1명당 평균 대출액은 3.3억원으로 비자영업자의 3.7배 수준이었고, 올해 1분기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1.66%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가진 자들에게는 선심 팍팍 쓴 정부가 정작, 폐업 위기와 빚내서 빚 갚고 세금 내는 이들에 대한 공제는 축소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 이번 세법개정안의 목표로 내세운 ‘민생안정 지원’이 기만인 이유다.

2년 연속 세수결손을 공식화하고도 재벌·대주주·부자감세를 내놓은 현 정부에게 경기침제와 여러 위기 속에서 생활고로 신음하는 민생이 보이는지 의문이다. 세금을 감면받을 여력이 있는 이들에 대한 혜택을 민생정책으로 포장하고, 결과적으로 재정 여력을 악화시켜 민생정책을 축소할 뿐이다. 해묵은 낙수효과에 기댄 감세정책만 내놓는 감세 완결판을 국회가 반드시 막고, ‘역동적 성장’과 ‘민생안정 지원’을 위한 세원확충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중기이코노미 객원=김은정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