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한 이들이 글쓰고 나누는 나만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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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 ㅣ 우린 중기인 잠들지 못한 이들이 글쓰고 나누는 나만의 공간 구글·애플, 올해를 빛낸 최고 아름다운 앱 선정…글쓰기 ‘씀’ ㈜10B

기사입력2017-01-26 20:52

채민선 기자 (iscra7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사람들은 끊임없이 표현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죠. 하지만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 혼자 생각이 많아질 때, 혼잣말을 담아둘 곳이 없습니다.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글을 쓰는 공간, 그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씀을 개발한 ㈜10B의 이지형(오른쪽) 대표와 이윤재씨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글쓰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다. ©중기이코노미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선후배 사이인 이지형 대표와 이윤재씨는 룸메이트였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산업디자인을 부전공한 이지형씨와 디자인을 전공하고 컴퓨터공학을 부전공한 이윤재씨는 대화가 잘 통했고 함께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두 사람 다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글쓰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라 일상적이고 사적인 글쓰기 말입니다.”

일상의 글쓰기 ‘씀’을 개발한 새싹기업 ㈜10B(텐비)의 명함에는 공직적인 직함이 없다. 이지형씨와 이윤재씨가 공동대표지만, 둘은 그냥 개발자라고 말한다. 2015년 12월 씀을 탄생시킨 첫날, 아는 이들 15명이 씀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했다. 두번째 날에는 100명이 모이고 일주일 만에 2000명, 그리고 한 달 만에 사용자가 1만명으로 늘었다.

“그때 이런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상적 글쓰기 ‘씀’ 메인화면.<자료=텐비>

진지하게 사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투자회사에 투자제의를 했다. 마침 투자회사 ㈜프라이머에서 3500만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섰고, 둘은 서울로 올라온다.

“구파발에 작은 오피스텔을 구해 먹고자고 카페에서 일하며, 지난해 6월 정식버전이 나왔습니다.”

하루 두 번 영감주고, 쓰기를 부추기는 글감 제공

왜, 하필 글쓰기였을까?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둘이었다. 정작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상의 이야기를 쓸 만한 공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먹거리, 여행, 패션, 놀이…,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SNS에 신물이 난 것도 한몫을 했다.

씀에서 하루 두번 글감을 제시하면, 사용자들의 일상을 담은 글들이 올라온다.<자료=텐비>

“이런 어플리케이션이 있다면 ‘반드시 쓰겠다’고 생각해 만들었죠. 하지만 막연한 글쓰기 보다는 영감을 주고, 쓰기를 부추길 수 있는 글감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오전 7시와 오후 7시, 씀은 하루에 두번 글감을 준다. 지난 20일 오전의 글감은 ‘터널’이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일본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雪國)’의 한 대목을 제시했다. 사용자는 터널이라는 글감을 받아들고, 각자의 삶에서 떠오르는 터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1만5000여개의 터널이라는 글이 생산된다. 자신이 등록한 글은 자신만 볼 수도 있고 원한다면 다른 사용자들과 나눌 수도 있다.

현재까지 씀의 누적 사용자 수는 52만명을 넘었다. 매일 두번 제시한 글감도 830여개에 이른다. 하루평균 1만5000여명의 사용자가 글을 남기고 지금까지 200만편의 글이 모아졌다.

“처음에는 둘이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죠. 책에서 좋은 문구를 찾아도 전체를 관통하는 한 단어를 잡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2016년 ‘올해를 빛낸 아름다운 앱’ ‘최고작’ 선정

씀은 2016년 구글 플레이스토어의 ‘올해를 빛낸 아름다운 앱’, 애플 앱스토어의 ‘올해의 최고작’으로 선정됐다.

“갑작스런 관심에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고 넘어야 할 산들이 많죠. 처음하는 사업이라 모두 서툴고, 경험있는 개발자라면 겪지 않아도 될 시행착오도 많이 있었습니다.”

텐비는 지난해 말 알토스벤처스로부터 후속투자를 받았다. 창업기업을 돕는 정부 지원사업도 많지만, 텐비는 자유로운 사업을 어렵게 하고 또 많은 서류작업을 요구하는 이를 아직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인력도 많지 않은데 다른 일에 시간을 할애하면 본업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수익화 모델을 만드는데 한창이다. 텐비는 씀에서 사람들이 읽고 쓰는 일을 즐길 수 있도록 플랫폼 기능을 정비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씀에 올라온 글을 책으로 묶어 출판도 했다. 향후 이를 바탕으로 ‘나만의 책 만들기’ 사업을 고려중이다.